봉안신청서

홍성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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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성용 작성 750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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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안신청자

신청자명홍성용
이메일myksaf@gmail.com
봉안자와의 관계사무국장
주소사무국장
일반전화서울 서초구 서초대로46길 65 아주빌딩 B1
휴대전화02-552-8868

▨ 봉안대상자

성명010-2728-8034
주민등록번호허승관
추천단체730509-1122715
소속단체(사)한국대학산악연맹
사망일자1999.7.29
사고일자1999.7.29

▨ 사고경위/특이사항

1999년 연세산악회 브로드피크 원정대 일정 (동국대산악회 고 박영석 대장 팀과 합동 등반)

6 12일 선발대 출국

6 19일 본대 출국

7 10일 베이스캠프(4,900m) 건설

7 14 1캠프(6,150m) 설치

7 15 2캠프(6,800m) 설치

7 29 3캠프(7,300m) 설치

7 2930 1캠프로 하산중 허승관대원 실종

7 31 1캠프 부근 수색

8 3일 베이스캠프 철수

8 11일 귀국

 

727일 날씨가 양호하다고 예보되어, 아침식사 후 처음이자 마지막인 정상공격을 시도한다고 결정했다. 전종주, 허승관 대원은 박영석 대장, 강성규, 박강모 대원과 함께 1차 공격조에, 임공택 대장과 현창길 대원은 이치상, 오은선, 김형우, 함동호 대원과 함께 2차 공격조로 편성되었다. 27일 새벽 4시 구토와 복통을 호소한 현창길 대원을 제외한 10명 대원들은 전진캠프를 향해 힘찬 발걸음을 내디뎠다. 등반 루트는 베이스캠프에서 보낸 8일 동안 환경 의 변화가 많이 있었다.

하단부는 눈이 거의 녹아 바위면이 드러나 있었고 낮에 흘렀을 물은 고드름이 되어 얼어붙어 있었다. 한발 한발 조심스럽게 발을 옮기며 하산을 걱정했다. 오랜 휴식으로 리듬이 깨져서인지 몇몇 대원들이 힘들어했지만 전진캠프까지는 순조로운 운행을 했다. 1차 공격조는 전진캠프에서 잠시 쉰 후 다시 제1캠프로 향했다.

1캠프로 향하는 설사면도 눈이 많이 녹고 얼음이 드러나있어 중단 이후부터는 고정로프를 사용해야 했다. 운행속도도 각기 달라 필자의 경우 선두와 2시간 정도 차이가 났다. 8일 동안의 강설로 망가진 1캠프의 텐트를 보수하고 추가로 텐트 한 동을 더 설치하였다. 28일 아침 1캠프를 출발한 1차 공격조는 리지상의 고정로프 구간을 지나 기존 3캠프지인 설원으로 이어지는 설사면에 이르렀다.

이 설사면은 전짐캠프와 1캠프 사이와 마찬가지로 얼음이 곳곳에 드러나 있었고 심지어는 크레바스도 드러나 있었다. 기존 캠프지에 도착한 대원들은 잠시 숨을 고른 뒤 2캠프로 이어지는 암릉구간을 향해 설원을 횡단하기 시작했다. 암릉과 그 위 너덜지대를 통과하여 도착한 2캠프에는 오스트리아대가 버리고 간 34인용 텐트가 있어 유용하게 사용했다. 또한, 복통으로 베이스캠프에 머물고 있던 현창길 대원은 새벽 4시에 운행을 시작하여 1캠프로 합류하는 투혼을 보여줬다. 29일 아침, 약간은 무거운 머리로 일어났지만 전반적인 컨디션은 양호했다. 그러나, 허승관 대원은 두통을 호소했다.

이 날은 7300미터 지점에 설치되어 있는 외국원정대의 텐트를 사용하기로 되어있어 짐이 그리 많지 않아 부담을 덜어줬다. 3캠프까지는 설사면이 지루하게 이어진 코스로 허대원이 자꾸 처지기 시작했다. 국내 훈련시 지칠 줄 모르는 체력의 소유자였던 그가 한발 한발을 무겁게 옮기더니 급기야 설사면에 주저 앉고 말았다. 2캠프의 스페인대 캠프에서 허대원을 40분 정도 기다린 필자(전종주 대원)는 허대원에게 접근해서 그의 짐을 넘겨받고 그에게 하산할 것을 권유했다. 그리고, 허대원은 아주 천천히 2캠프로 하산을 시작했다. 필자는 3캠프에 먼저 도착한 선두보다 2시간 정도 늦게 도착했고 허대원 대신 1차공격조에 편입된 함동호대원은 오후 5시경 3캠프에 도착했다.


돌아오지 않은 허승관 대원

한편 2캠프에 도착해 휴식을 취했던 허승관 대원은 힘들게 2캠프에 도착한 현창길 대원과 함께 1캠프로 하산을 시작했다. 텐트를 나서는 허승관 대원에게 임공택 대장과 오은선 대원은 미숫가루를 탄 수통을 건넸고 허승관 대원은 특유의 미소로 답했다. 그러나, 누구도 그 모습이 허대원의 마지막 모습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오후 5. 3캠프에 있던 필자는 하산하는 허승관, 현창길 대원을 무전으로 불러 상황을 알아보았다. 현창길 대원은 고정로프가 없는 설사면을 내려섰으며, 1캠프가 보이는 고정로프 시작점에서 간식을 먹으며 휴식을 취하고 있다고 답했다. 필자는 안도의 숨을 쉬었다. 그러나, 9시경 현창길 대원으로부터 긴급한 무전이 왔다.

하산 중 허승관 대원과 헤어졌으며 자신은 길을 잘못 든 것 같다는 것이다. 그는 랜턴이 없는 관계로 더 이상의 운행은 어려우며 그 위치에서 비박을 하겠다고 알려왔다. 2, 3캠프에 있던 대원들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모두들 당황했다. 박영석 대장은 현창길 대원에게 비박에 필요한 주의사항을 전달했고 안전을 당부했다. 그리고, 허승관 대원은 먼저 제1캠프에 도착해서 현창길 대원을 기다리고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30일 새벽 2. 3캠프의 다섯명의 대원들은 정상공격을 위해 기상했다.

양송이스프로 간단한 아침식사를 한 후 텐트 밖 상황을 보니 밤사이 눈이 많이 내렸다. 공격조는 고심 끝에 당일 공격을 포기하고 말았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다시 잠을 청할 무렵 비박을 하던 현창길 대원으로부터 무전이 왔다. 자신의 비박지가 1캠프 바로 위였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1캠프에 도착한 현대원은 캠프에 허승관 대원이 없다고 떨리는 목소리로 알려왔다. 그렇다면 허승관대원은 도대체 어디 있단 말인가? 즉시 침낭 수를 파악하라고 지시했다. 그의 대답은 3개였다. 원래 4개가 맞는데 한 개가 없는 것이다. 허승관대원이 침낭 하나를 가지고 전진캠프로 하산했다는 추리가 가능했다.

급히 현대원을 전진캠프로 하산시켜 확인토록 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아무 생각 없다. 좁은 텐트에 앉아 무전기만을 쳐다보며 소식을 고대하던 끝에 전진캠프에서 올라온 소식은 '허승관대원이 없다'였다. 또한 폭설로 하산중이던 스페인, 프랑스 대원에게 무전으로 부탁하여 외국캠프지를 수색했지만 허승관 대원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실종'이었다. 원정대는 즉시 등반을 포기하고 수색작업에 나섰다. 2캠프의 이치상, 김형우 대원이 먼저 1캠프로 향했고, 나머지 대원은 캠프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같이 등반에 나섰던 피터도 수색작업에 동참했다.

3캠프의 대원들이 2캠프에 도착한 후 이치상 대원으로부터 1캠프지 아래 설사면에서 붉은색 물체를 발견했다는 연락이 왔고, 허승관 대원 의류색상에 대해 물어왔다. 붉은색에 검정색 배색. 하산 당시 허대원은 붉은색 파카에 검정색 덧바지를 입고 있었다. 이 물체는 1캠프로 하산하던 모든 대원들에게 목격되었고 형상으로 보아 허승관 대원으로 여기게 되었다.

그러나, 신설로 인한 눈사태의 위험과 화이트아웃으로 인한 시계불량으로 접근은 다음날로 미루어졌다. 31, 수색을 위해 1캠프에 남아있던 대원들은 가스가 걷히기를 기다려 고정로프와 등반로프를 이용하여 문제의 물체에 접근했다. 그 물체는 허승관대원이 아닌 그의 우모 파카였다. 그리고, 사방 어디에서도 그의 흔적을 찾지 못했다. 계속되는 분설과 가스로 수색을 중단한 대원들은 베이스캠프로 철수를 시작했다.

전진캠프 아래 구간은 따뜻한 날씨로 반 이상이 폭포를 이뤘고, 계속되는 눈사태와 낙석이 대원들을 공포로 몰아갔다. 베이스캠프에 도착한 대원들은 다음날까지 망원경으로 사고지점 주위를 관측하고 산의 하단부를 수색했지만 아무런 흔적을 찾지 못했다. 우모 파카가 발견된 지점 아래에는 거대한 크레바스와 세락이 형성되어 있다. 그렇다면 그쪽으로 빠진 것일까? K2메모리얼에 허승관 대원의 이름을 새긴 스테인리스 접시를 박으면서도 그의 부재를 실감하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그의 특유의 미소로 눈앞에 나타날 것만 같다.

 

고 허승관 대원 발견

김홍빈 대장의 히말라야 14좌 완등 후 사고 뉴스가 나온 다음날, 주 파키스탄 한국대사관과 광주전남산악연맹에서 대학산악연맹을 통해 1999년 연세산악회 브로드피크 원정대원의 시신이 외국대원에 의해 발견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당시 원정대 마크가 있는 옷을 보고 허승관 대원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당시 대원이었던 현창길 대원은 곧바로 현지 수습을 하러 갈 의사가 있음을 밝혔고, 김홍빈 대장 수색팀과 함께 급히 현지로 가게 되었다.

728일 출국하여 브로드피크 베이스캠프 근처에서 시신을 수습하고 현지 상황에 따라 장례 절차를 치르고 811일 귀국하는 일정이다.

유족은 연세산악회에 시신 수습과 장례를 일임하셨고, 연세산악회에서 수습 대원을 급파하여 시신 수습 및 장례 절차를 진행하며 연세산악회에서 모든 비용을 부담하여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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